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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칼럼2-11] 일없는 노년에 대한 오해

노동시간센터 2016.08.26 05:49

노동시간센터에서 노동과 시간을 주제로 기획하여 다달이 연재했던 칼럼을 홈페이지에 공유합니다. 

[시간의 재발견: 노동시간에세이] 칼럼들은 노동시간센터 회원들이 직접 쓰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와 <오마이뉴스>에 게재하였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91331

올해 명절에도 어김없이 고향집에 내려가서 볼멘소리를 한바탕 하고 왔다. 작년 부로 칠순을 넘기신 어머님께 농사일 좀 줄이시라고 매년 말씀드리는데 전혀 먹히질 않는다. 칠십 평생 농사일, 식당일 가릴 것 없이 해오신 어머님은 이미 성한 곳이 하나 없는데도, 일 그만두면 병난다며 한사코 하던 대로 하시겠단다.

"일 그만두면 병난다." 흔히 하는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일하며 평생을 보내야 한다'는 무서운 결론에 도달한다. 그럼에도 묘한 설득력을 갖는 말이다. 왜 그럴까?

일 '그만두면' 병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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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흔히 선택하는 아파트 경비직의 예를 들어보자. 뭐라도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혹은 일이 없으면 생계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비직을 시작하게 된다. 일 하게 된 이유야 어찌 되었건, "놀면 뭐해 일이라도 해야지, 이렇게라도 나오니 활동이라도 하지 안 그럼 병나" 뭐 이런 말씀을 하신다. 

하지만 맞는 말일까? 교대 작업은 뇌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인자로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고령자들은 이미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되도록 교대 작업은 피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교대 작업으로 인해 뇌심혈관계 질환이 악화되어 경비근무 도중 사망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말 그대로 죽는 날까지 일하는 것이다.

반면,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는 정년 연장을 반대하는 총파업이 성사되기도 했다. 고령 노동자라고 차별받지 않도록 정년 연장을 통해 일자리를 보장해주겠다는데도 총파업을 하다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유럽의 경우 정년과 연금 수령 연령은 대부분 65세로 맞춰져 있다. 또한 연금을 통한 보장액도 OECD 국가에서 평균적으로 은퇴직전 소득의 63% 수준을 보장해주고 있다. 즉, 은퇴를 해도 상당한 수준의 소득이 사망 시까지 보장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는 정년 연장은 곧 연금 수령 연령이 올라가는 것을 뜻하므로 일방적인 국가의 긴축재정에 맞서 총파업까지 이끌어내는 것이다. 유럽에 비하면 한국에서 퇴직 이후의 삶은 암담한 수준이다. 한국의 정년퇴직은 54세에서 60세 사이로 정해져 있고 연금 수령은 65세 이후부터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의 보장성도 은퇴 직전 소득의 25~30%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당장 직장을 잃으면 연금 수령까지 10년 가까이 공백이 있고 그 이후 연금을 받는다 해도 평균적으로 직전 소득의 25~30% 수준으로 생계조차 꾸려나가기 힘들다.

노년에 일을 가장 많이 하는데, 가장 가난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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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의 소득원 구성 출처 : 국제비교를 통해 살펴본 한국노인의 소득 및 빈곤실태 정경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issue & focus 1,2009.9 1-8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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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포브스 지는 한국의 노년 빈곤에 대한 OECD 통계 관련 보도를 실었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년 인구의 빈곤율이 50%에 가까운 수준으로 OECD 평균 11.0%에 비해 5배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바로 다음의 노년 빈곤율을 보이는 호주와도 15%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포브스 지는 이를 '연금 제도의 미성숙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노년 소득에서 근로 소득 비중이 가장 큰 국가라는 점이다. 즉, 일은 가장 많이 하면서도 가장 가난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의 소득원 구성> 그래프를 자세히 보면, 한국 다음으로 노년 빈곤율이 높았던 호주의 경우 가난함에도 노년에 일을 통해 얻는 수익은 많지 않다. 다시 말해 일반 인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한 노년이라 할지라도 일을 안 하고 버틸만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결국, 노년에 일을 가장 많이 하면서도 엄청난 빈곤율을 보이는 한국의 노년은 '미성숙한 연금'에만 그 원인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노년층 노동은 저임금, 비정규직, 고용불안정의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 <유럽연합, OECD와 비교한 한국 고령근로자의 고용관련 점수표>를 보면, 한국의 노년층은 EU나 OECD의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고용률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65~69세의 고용률은 43.8%로 다른 나라 평균 11.2%, 19.6%와 비교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리고 일자리의 질을 살펴보면 임시직 비율이 36.7%로 다른 나라 평균인 6.7%, 8.7%에 비해 엄청나게 높고, 그러한 일자리의 월평균 소득은 청장년층의 82% 수준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은퇴 연령 역시 한국 남성의 경우 71.1세다. 62.4세나 64.2세에 보장된 정년보다 오히려 빨리 은퇴하는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히 늦다. 

종합하여 해석하면, 한국의 노동자는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연금과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로 인해 일반적 퇴직 연령인 55세 전후부터 실제 은퇴 연령인 70세까지 꾸준히 일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일자리는 임시직, 저임금의 질 나쁜 일자리들로 빈곤을 해소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노인자살률 1위로 이어지는 연쇄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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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연합, OECD와 비교한 한국 고령근로자의 고용관련 점수표(출처 : 제7차 인구포럼-고령사회대책 토론회-은퇴없는 사회를 위한 고용시스템 개선 방향 /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 한국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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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늙고 병든 몸으로도 일을 놓지 못하는 현실은 '일 그만두면 병난다'는 억지스러운 자조를 낳았다. 질 낮은 일자리로 인해, 일을 하면서도 해소되지 않는 경제적 빈곤은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라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자살하는 한국의 노년층은 실제로는 한국의 경제 성장을 중추적으로 이끌어온 세대였다. 근면함을 미덕으로 알고 열심히 살았고 노후는 생각도 못 하고 기업과 직장, 나아가 국가의 발전을 위해 낮은 임금과 장시간 근로를 버텨왔던 세대인 것이다. 

하지만 그결 과는 어떠한가? 재벌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710조 원으로 천문학적인 숫자로 불어났지만 국가의 재정은 부채만 늘어가고 연금과 복지는 전혀 노년의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평균 수명이 늘고 노년 인구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에, 정년 및 연금 수령 연령이 늦춰지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로 보인다. 이 과정을 먼저 겪은 유럽은 기존의 정년 연령에 맞춰 퇴직하고 연금 생활을 하려는 경향을 무마하기 위해, 오래 일 할수록 인센티브를 주거나 고용을 보장해주고 노년의 신체 능력에 맞는 일자리로의 이직을 유도해 지속적인 근로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한국은 앞서 보다시피 출발점이 다르다. 일찍 퇴직하면 편안한 연금생활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의 비정규직 혹은 적은 연금 수입에 의존하는 장기 실업 상태인 진정한 '헬조선'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일 그만두면 병난다'라는 말을 누구라도 수긍하게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년의 근로는 정책적으로 유도할 필요도 없고, 임금 피크제로 임금을 줄인대도 일만 하게 해주면 고마운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금 피크제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제안이 힘을 얻어서는 안된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아무런 준비 없이 발생한 엄청난 규모의 '노년층 빈곤'이지, '정년의 연장' 그 자체가 아니다. 다시 말해 현재 한국에 필요한 제도는, 임금을 삭감해 노년층을 더 활용고자 하는 질 나쁜 고용연장이 아니라, '노년층의 빈곤'을 실질임금을 통해 해결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생소한 이야기가 있다. 일을 그만두면 건강을 더 잘 챙길 수 있고 은퇴 후 남는 시간은 편안하게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당연히 그렇다. 그래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그렇게 일찍 은퇴하고 싶어한다. 

한국의 현실은 그 당연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암담하다. 한 번뿐인 삶에서 노동의 시간은 정년 기간만으로 충분하고 그것만으로도 노후가 보장되는 정책이 필요하다. 당연히 그러한 정책은 이미 가난할 대로 가난한 노동자를 쥐어짜서는 나올 수 없다.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은 기업과 정부의 고통 분담을 이제라도 이끌어내야 한다.

이제 나이 들면 우리도 은퇴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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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ECD 국가 중 상대적 소득 빈곤에 처한 65세 이상의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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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권종호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회원이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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