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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칼럼2-14] 사회적 안전망 구축해야 적정한 노동시간이 보장된다

노동시간센터 2016.08.26 05:53

노동시간센터에서 노동과 시간을 주제로 기획하여 다달이 연재했던 칼럼을 홈페이지에 공유합니다. 

[시간의 재발견: 노동시간에세이] 칼럼들은 노동시간센터 회원들이 직접 쓰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와 <오마이뉴스>에 게재하였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19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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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벌어야 행복할까?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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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가장 좋은 것, 최고선이다, 최고선은 다른 것을 위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물론 그가 말한 '행복'은 현대 우리 일상에서 상용하는 행복과는 다른 개념이기는 하다. 그래도 말 자체에 별다른 이견을 달고픈 생각은 없다. 세상에서 딱 두 종류의 사람만을 구분한다면 '죽지 못해 사는 사람'과 '안 죽으니까 사는 사람'일 것이다. 

전자는 비참한 삶이 분명하고, 후자라고 해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후자인 경우 죽지 못해 사는 것은 아니므로 나름의 목적 또는 삶의 방향이 있을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든 '행복한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불행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 GDP순위 11위로 경제대국 이지만 사회통합실태조사(2014년)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도'는 10점 만점에 5.7점으로 낮은 수준이며, OECD의 '2015년 삶'에서 5.8점으로 35개국 중 28번째를 차지하고 있으며, UN의 '세계행복보고서(2015)'에서는 5.98점으로 158개국 중 47위로 경제규모에 비하면 그에 상응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여러 국가 역시 국제적 수준에서 국가의 경제력이 행복지수와 상관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적 수준에서는 일정한 경제적량 즉 소득 수준은 행복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여러 연구나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경제력 규모가 큰 국가라 하더라도 국내의 소득 분배 구조와 사회적 지원의 정도가 취약할 경우 경제적 규모와 행복지수간의 간극을 발생시키는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아무튼, 행복한 삶의 기준과 요건에 있어 절대적 기준이 있을 수 없고, 각자의 주관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하여도 행복한 삶의 전제 조건 중 경제적 여건의 중요성을 무시하기는 어려운 것임은 분명하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이장의 '영도력'의 시작은 "잘 멕이는"것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소득이 행복에 영향을 미칠까

미국 과학학술원지(PNAS)의 논문에 따르면 소득이 높아질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는 계속 높아지지만, 행복감은 연봉 7만5000달러(약 9000만 원)에서 더 이상 높아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소득이 9000만 원 까지는 연봉이 높아지면 행복감도 높아 지다가, 연봉이 9000만 원이 넘어 1억 원이 돼도 더 이상 행복감이 증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월급으로 따지면 약 700만 원 정도다.

이 연구 결과는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소득은 행복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참 많이 벌어야 한다. 한편 이 연구에 대한 추가 해석이 있다. 행복도는 멈추지만 만족도는 줄어들지 않아 일정 정도 소득 이상이면 소득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것이지, 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매경이코노미> 조사(2009)에 의하면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응답은 단연 '경제적 안정'이다. 36%가 1순위로 경제적 안정을 꼽았다. 다음이 개인의 신체적 건강과 가족의 화목이다. 23%와 19%다. 이는 1순위로 답한 응답만 고려했을 때 결과다.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소득이 적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문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지를 물었다('0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에서 10점: 매우 동의한다' 까지의 구간). 무려 65%가 6점부터 10점으로 대답했다. 더 많은 소득이 행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최소한 어느 정도 소득이 있으면 될까?'라는 질문에는 '4인 가족 기준 월 401만원에서 500만원이 최소한 필요한 소득'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28%로 제일 많았다. 다음으로는 301만원에서 400만원(25%), 501만원에서 600만원(22%) 순이었다.

'서울시민 행복도 조사'(2010년)에서 소득이 증가 할수록 행복도도 증가하지만 400만 원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소득이 늘어도 행복도는 오히려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연구결과와 달리 400만 원이 넘어가면 더 많은 소득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감수해야 할 희생도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도가 떨어졌다고 하니, 업무강도 강화나 노동의 시간 증가가 영향을 준 것이라 추측된다. 

업무강도의 부가나 노동시간의 부가가 없다면 더 상승된 임금이 측정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앞의 두 조사를 고려하면 한국인에게 월 400만 원, 일 년에 4800만 원 정도가 행복을 전제하는 최소 또는 한계 소득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일해야 행복할까

소득과 행복의 중요한 관계를 언급한 것은 이것을 통해 행복한 삶을 위한 노동시간의 문제를 추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노동자의 소득은 노동시간의 길이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2016년 3월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통계청)에 의하면 정규직의 경우 283만 원, 비정규직은 151만 원이었다.

2015년 하반기 '지역별 고용조사'(통계청)에 의하면 200만 원 월급 미만인 노동자가 50%(47.4%)가까이 되었다. 2014년도 '소득분위별 근로자 임금 분석'(전경련)에 의하면 임금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3240만 원. 중간순위는 2465만 원 이었다. 9분위(상위 20%)의 최저연봉이 4586만 원이었다. 이 같은 통계수치를 보면 한국인이 행복을 위한 최소 또는 한계 소득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는 월 400만 원에 딱 절반인 200만 원조차 벌지 못하는 임금 노동자가 절반 가까이 되고, 월 4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근로자가 전체의 80%이상이 된다.

2015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가 조사한 경기지역 중소제조업 사업장의 평균 1일 노동시간은 10.4시간이며, 평균 임금은 236.4만 원이었다.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았다면 평균 200미만의 임금을 받는 셈이다. 다른 통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거칠게 보면, 300명 미만 사업장이 98% 이상이고, 고용인원 역시 80%이니, 대부분의 한국 노동자는 경제 외적인 다른 행복의 전제들을 갖추고 있어도, 긍정적 마음을 아무리 다져 먹어도 행복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궁핍하다.

적정 노동시간과 임금, 그리고 적정한 사회적 지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의 노동시간은 길다. 전체 취업자 1인 평균 노동시간이 2124시간(2014년)이다. 이를 단순히 계산해도 월 177시간으로, 법정노동시간인 주 40시간에 17시간 넘기는 것인데, 연차 휴가 등 법정휴가와 공휴일 등을 고려하면 그 이상의 추가 노동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전경련의 통계에서 근거한 월평균 임금은 270만 원으로, 월 400만 원을 벌기 위해서는 평균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약 월 85시간을 더 일해 일해야 하여 월 262시간을, 연단위로는 1020시간을 더하여 3144시간을 일해야 하는 것이다. 하루에 10시간을 일한다 치면 한 달에 27일 가까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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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400만 원을 번다한들 살인적인 노동시간으로 건강을 해치고 사회생활이 파괴되어 행복한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주 40시간 일하는 최저임금 노동자라면, 월 507시간을 일해야 가능하고, 하루 10시간을 일한다 해도 한 달 51일 가까이 일해야 하므로 불가능한 것이다. 법정 노동시간을 준수하고는 사실상 대부분의 노동자가 행복을 전제할 경제적 조건을 형성하기에 버거운 것이다.

세계경제 11대 대국, 한국은 상위 10%가 소득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얼마나 일해야 행복할 만큼 벌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다면, 다시 말해 "적정한 노동시간이 얼마냐"고 묻는다면, 현재의 대답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 가능하지 않다"이다. 

노동시간을 늘리기에는 달력의 날수가 턱없이 부족하고, 어거지로 늘려본들 건강과 관계가 파괴되니 행복할 리가 없다. 반대로 노동시간을 줄이면 대부분 노동자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필요소득이 줄어든다. 시급을 받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시간당 임금의 상승이 적정한 노동시간을 가늠하는 출발이다.

양극화된 소득구조의 해소가 행복을 위한 적정한 노동시간을 보장한다. 교육, 주거, 노후의 사회적 지원이 적정한 노동시간을 보장한다. 아무리 노동시간을 줄이자고 해도 이것이 병행되지 않으면, 노동시간은 인간적이고 적정할 수 없으며, 노동자는 빈곤이 도사리는 노동시간의 덫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재광 기자는 노동시간센터 회원이자 공인노무사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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